






iseojae (coming soon)
architect : NOMAL
area : 54.12 ㎡
location : Jongro-gu, Seoul
program : Residential
construction : Koopartner
photo : NO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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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재(利敍齋)는 이롭게 펼치는 집이라는, 집의 이름이기도 하고 작가이름이기도 하다. 삶과 집을, 작품과 자신을 따로 두지 않고 하나로 일치하고자 함이다.
- 옛집 -
이서재는 긴 유학생활을 마무리하고 파리에서 귀국하였을 때, 경복궁 서측 인왕산 자락 아래 작은 한옥집을 구해 우리의 뿌리에 기대어 살고자 하였다. 직접 수리하며 한지를 바르고, 부서진 곳을 고쳐가는 과정 속에서 집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였다. 이후에도 우리의 뿌리에서부터 오는 삶과 전통을 보고, 익히며 집에 담아왔다.
한옥에서 창은 단순히 실내외를 구분하는 구조물이 아니라, 자연과 소통하는 창구이자 차경의 미학을 실현하는 매개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외부를 보기 위한 틀의 역할 보다는 외부의 풍경은 실내로 스며들고 내부는 외부와 경계를 허물며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현대인은 서구화된 생활과 전자기기들로 둘러싸여 모기장과 창을 사실상 외부와 경계를 만들어 지낸다. 하지만 이서재는 한옥의 본질을 온전히 누리며 창을 열어 두었다. 마당의 대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바람, 그리고 대나무의 소리는 이 공간을 더욱 풍요롭게 하였으며, 마당에서 계절의 변화를 맞이하였다. 그 안에서의 삶은 단순한 일상이 아닌 우리 뿌리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서재는 ‘집전’이라는 이름으로 집의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이하며 삶과 전통을 나누고자 하였다. 직접 빚은 도자기에 음식을 담고, 전통 방식으로 빚은 술을 나누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들은 단순한 환대를 넘어 철학과 삶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집 곳곳에는 이서재가 직접 걸으며 마주한 우리 땅의 풍경이 담겨 있다. 종이와 삼베에 먹으로 그려낸 풍경들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닌, 이 땅과 맺은 관계와 기억의 표현이다. 결국 이서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뿌리와 삶의 방식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공간이며 앞으로도 우리의 삶과 전통을 이어가고, 그것을 나누는 중심이 될 것이다.
- 이전(移轉) -
새 집은 옛 집에서 도보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옛집과 다소 비슷한 구성이지만 마당과 별채 한 칸의 추가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가능성과 잠재성이 있었다. 이서재를 옮기는 과정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기에 지속적인 탐구가 필요했다.
새로운 비전과 창작물을 제안하기보다, 이서재가 지난 세월 동안 구축해온 가치와 철학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닌, 축적된 시간 속에 형성된 본질적인 요소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재해석하고자 함이었다.
지난 시간동안 집전에 참여하거나 간간히 방문하며 나누었던 공간적, 감성적 정체성은 중요한 자산이었다. 이러한 축적을 바탕으로 옛집에서 무엇을 옮겨와야 할지, 그리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요구되었다. 이는 이서재라는 공간이 단순한 물리적 형태를 넘어, 시간과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의 경험이 축적된 유기적 존재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가진다.
옛집의 요소를 새로운 맥락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본래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요구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전통적인 미감과 공간적 철학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적 변화에 따른 기능성과 활용도를 고려한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 새집 -
새 집은 단순히 공간의 완성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이서재의 발자취와 삶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직접 빚어낸 하나의 그릇이 되기를 바랐다. 건축가로서의 역할은 이 집을 완결된 작품으로 마무리하기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터전을 마련하는 데 있다고 여겼다.
오래된 한옥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구조가 기울거나 뒤틀린 부분들이 있었으며, 일부는 썩어 사라지기도 하였다. 수선 과정에서 이러한 부분을 교체하고 보강하며 기존 한옥 목구조를 최대한 유지하려 하였다. 동시에 현대적 생활의 필수 요소인 전기와 설비 기기들은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숨겨, 전통의 미감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새 집은 크게 사적인 공간 두 곳과 공적인 공간 한 곳으로 나누었다. 사적인 공간으로는 각각 손님이 묵을 수 있는 다실과 이서재가 머무는 침실이 마당을 통해 마주하고 있고, 공적인 공간은 거실, 주방, 손님용 화장실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구분은 집전을 고려하여 실용적이면서도 이서재의 삶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한 설계였다.
각 실들은 창 측의 복도로 연결되면서도 각기 다른 색채를 사용하여 시각적으로 구분되었다. 특히 작업실로도 활용되는 거실과 주방은 음과 양의 색을 활용하여 명확한 대비를 이루었으며, 이는 투명한 창을 통해 정원에서 내부를 바라볼 때도 확연히 드러나도록 하였다.
주방과 작업실, 침실 앞에는 작은 툇마루를 두어 마당을 둘러 앉을 수 있게 하였다. 다실 앞에는 보다 큰 툇마루를 낮게 설치하고 그 아래에 현무암을 괴어 편안한 평상을 제공하도록 하였다. 툇마루와 앞의 담장 역시 현무암 돌담으로 쌓아 올려, 정원수의 배경이 되도록 하였다. 이는 옛집 마당의 대나무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떠올리며 구상하였다.
침실 공간에는 유리 창호 외에도 한지 창을 더해 더욱 사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 한지 창은 안고지기 방식을 적용하여 미닫이와 여닫이 기능을 동시에 갖추었으며, 활짝 열었을 때 외부 풍경을 품어 차경의 미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특히, 창호의 문살은 이서재가 직접 자신의 미감과 철학을 담았다.
충분한 수납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보일러실과 세탁실 외에도 집 곳곳에 수납공간을 마련하였다. 특히 반침 공간에 설치된 수납장은 집이 좁아 보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벽, 바닥, 천장과 일정한 간격을 두어 마치 이동식 가구처럼 느껴지도록 설계하였다. 외부는 한지로 꼼꼼히 마감하였고, 내부는 이서재와 비단천 배첩장 김산호가 함께 비단으로 마감하였다.
또한, 이서재가 지리지 작업을 통해 직접 모아온 돌들은 디자이너 옥나라와 공예가 현성환의 손길을 거쳐 손잡이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요소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이서재의 삶과 철학, 그리고 우리 땅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결국, 옛집에서 시작된 뿌리와 정체성은 새 집으로 이어져, 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되었다. 이서재는 과거의 유산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재해석하고 확장하여 현대인의 삶 속에서 더욱 빛나게 하였다. 앞으로도 이서재는 우리 땅과 전통,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공간으로서, 사람들과 삶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나눌 것이다.